밴드 혁오가 사랑한 네모. ‘네모난’ 이라는 이름으로 혁오의 앨범 표지 작업을 해왔던 노상호 작가를 소개합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작가. 매일 하나씩 <데일리 픽션> 이라는 이야기와 그림을 그려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만들어 갔던 작가인데요.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물을 탄 것처럼 일렁이는 그림은 짤막한, 때로는 조금 긴 이야기와 함께 그려졌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 때문일까, 모든 그림은 더 길고 긴 이야기의 한 장면을 포착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림과 글을 보고 나면 무엇을 느껴야 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서도 어쩐지 다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그래서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시는데, 학생 때는 엠티 가서도 일단 그림부터 그려놓고 놀았다면서요. 모아서 데일리 픽션 Daily Fiction이라는 책도 내셨던데.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리는 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3-4년 정도 되었네요.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 불안해서, 일단 연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색깔을 고르는 등의 결정을 할 때에도 잘 불안해하는 편인데, 매일 하다 보니 두려움이 없어지더라고요. 망하면 내일 또 그리면 되거든요. 보통 작가라면 자러 누웠다가도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밤새우고 작업할 거라고 기대하시겠지만 전 그런 타입이 아니에요. 그럴 수 없다면 성실하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만의 경쟁력이 돼버린 것 같아요.
‘늦으면 어때, 난 마흔 살에 시작했는데.’ 라고 쾌활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마흔 살에 시작해 여성 최초로 이중섭 상을 받게 되기까지. 유쾌한 작가만큼이나 유쾌하게 진행된 인터뷰 한 편을 소개합니다.
내 나이는 알죠? 이제 두 살 됐어ㅎㅎ
네. ㅎㅎㅎㅎ 82세… 그런데 너무 잘 걸어 다니시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일부러 곧으려고 노력해요. 정말 고백하건데 그림 시작하면서 운동했거든. 다른 운동 아니라 걷기. 한 시간씩 꼭 걷고. 빠지면 큰일 나요. 그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닌 거 같아. 몸으로 하는 거 같아.
난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글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신인 공모를 하는데 자꾸 떨어져. 떨어지고, 떨어지고.. 노력했는데 자꾸 낙선하고 그러니까 좌절하면서 나는 아닌가 보다. 난 왜 살아야 하지?
어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어. 가정생활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밥하고 청소하는 걸로 만족할 수가 없어. 윤석남은 존재하잖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한 그림 쪽으로 해야겠다. 안 하면 못 할 것 같다. 시작을 안 하면 내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존재 이유를 찾는 거죠. 그게 그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