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여류 화가 김숙 선생은 맨드라미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업 소재인 맨드라미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또 하나의 나’와 같은 꽃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꽃에서 보여지는 화려함보다는 꽃의 내면에 있는 순수함과 고요함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에서 김숙 작가는 평면에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도입하여 맨드라미의 색감이나 형상의 두터운 질감표현을 통해 현실속의 맨드라미를 보는 듯 싶은 형태미를 표현하면서도 맨드라미 꽃잎 하나하나 섬세한 터치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두툼한 붓터치의 맨드라미 그림은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작가와 대상의 동질성을 표현한 것이다.
빨갛고 뜨겁게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던 여름을 ‘이제 그만’ 다른 눈으로 들여다보면 ‘쉼’ 과 ‘멈춤’ 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가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온몸으로 여름의 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 여름은 당연한 듯 찾아왔던 보통의 더운 날과는 다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뜨거운 한여름의 순간에 와있고, 작가의 말처럼 다가올 달콤한 열매에 대한 기대감 없이도 여름은 그 자체로 값지고 의미 있습니다. 여름 뒤에 오는 쉼표 <,> 는 이 시간의 맺음이 아니라 여전히 겪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며, 작가의 그림 속 풍경처럼 차분히 느리게 흘려 내다보면 계절의 마지막엔 이 말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1980년대 초반 브라질에서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거리 문화로 그라피티 아트가 꽃을 피웠고, 곧 상파울루는 그라피티의 세계 수도로 떠올랐다. 심지어 브라질 정부는 2009년 3월, 건물주가 동의할 경우 어떤 곳이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 그라피티 문화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듀오 아티스트는 오스제미오스(OSGEMEOS)다.
오스제미오스의 작품에는 항상 가늘고 긴 팔다리, 과장된 신체 비율 등 만화처럼 표현된 노란 얼굴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작가들의 페르소나이면서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넘어선 보편적 인간을 의미한다. 작가들의 모국인 브라질이 다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지구 인류 공통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오스제미오스의 작품에는 모자 속 UFO, 인어 공주에게 하트 시그널을 보내는 어부, 고래 위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가수 등 시간과 장소가 모호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가 여럿 등장한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 사이의 느슨한 경계를 강조해온 작가들은 물리적 세계의 긴장을 늦춘다면 우리의 창의성이 더욱 잘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더 소울스(The Souls)’는 작가들이 보여주고자 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공간 속에 펼쳐놓은 작품이다. 스토리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꿈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표정은 우리의 기억 속 어렴풋이 자리잡은 특정한 사람이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극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것은 무엇인가? 소리는 음악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인가? 꼭 소리가 있어야만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피아노와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오민은 독특한 이력에서 드러나듯 음악의 구조와 형식을 작품의 소재로 다룬다. 이번 전시는 5곡의 음악으로 구성된 ‘부재자’, 그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상으로 기록한 ‘참석자’, 그 상과 함께 라이브 액션을 선보이는 ‘초청자’의 도큐멘테이션 상으로 구성된다. 이는 듣는 음악보다 보는 음악을 제안하는 시도이며 신체, 움직임 그리고 공간에 관한 질문이다.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는 각각 독립적인 작업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부재자’는 ‘참석자’,’초청자’의 기반이 되고, ‘참석자’는 ‘초청자’의 라이브 액션의 일부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오민의 작업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유도한다. 결국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는 소리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 신체, 움직임, 공간 등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