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예술 칼럼 (3)

>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과 그림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딜 아이들을 희망차고 밝은 이야기로 복돋는 건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결말만이 아이들을 격려하는 방법일까요? 돌이켜보면 당연하게도 어릴 적 우리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슬플 때도 있었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이미 가슴 속에 그 슬픔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거나 그리지 않는 건 어쩌면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안의 슬픔을 꺼내놓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아이들의 세계에 슬픔을 스며들게 하는 동화들이 결국 어떻게 아이들을 위로하는지, 동화 작가 케이트 디아밀로는 짧은 편지글(번역 : 김명남)을 통해 우리에게 전합니다. 

> 순간을 포획하는 단두대

이제 누구나 아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길가의 고양이 앞에서 동시에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건 일상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자신의 삶을 시시각각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언제든 카메라와 함께인 지금 우리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미련하게 놓치지 않는 준비된 사람들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 우리에게 올까요?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게 되는 그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인 걸까요? 카메라에 담길만 한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는 장면들을 포획한 다섯 명의 사진가를 소개하는 아티클을 함께 읽으며 고민해 보아요.  

somewhere place, Ryan McGinley  

> 엉덩이와 엉터리 사이에서 미술을 외치다 

‘그 많던 미대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다소 섬뜩하고 씁쓸한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미대생이 곧 미술가가 될 순 없다는 이제는 자명한 사실을 저 문장은 내포합니다. 왜 수많은 미대생들은 그림과 함께 할 수 없게 되는 걸까요? 그럼에도 그림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요?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앉아 오래 배우고 익히며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리에서 기꺼이 일어나 대중과 직접 부딪히며 스스로를 알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활로를 찾아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미술가들을 아래의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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