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모여 있는 그림들은 이미지가 아닌 글들로 읽혀지길 바랍니다. 내 그림들은 대부분 읽혀지기 위해 그려집니다. 읽혀진다는 것은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생각을 나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서로의 말이 아닌 글로써 생각을 나누는 것은 능동적인 일입니다.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림을 능동적으로 그립니다. 그려서 내가 만족스러운 것보다 보는 사람을 떠올리며 생각을 나누고 소통을 하며 나아가서는 연대를 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그림을 그립니다. 작업이 거의 '끝났을' 무렵 그림은 전시장에 걸리고 사람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죠. 그림을 완성이 아닌 '거의 끝났다'라고 이야기 한 것은 작품과 바라보는 사람 간에 공명이 일어나는 순간이 그림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간에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림이라는 단어보다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그림이 걸리면 저는 작가의 신분을 가리고 전시장 한 곳에 자리를 잡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그림을 보는 대부분의 눈빛들은 약간의 좌절감을 동반하며 이내 다른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다음 그림 앞에서도 얼굴에 좌절감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보여지는 것은 때로는 폭력적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의 인상에 영향을 받은 우리의 뇌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해석을 요구하는 이미지 앞에서 어떤 힌트도 찾지 못하는 관람객은 단서를 찾지 못해 쩔쩔매는 탐정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요. 더군다나 사물의 형체도 없는 추상의 이미지라면 범인을 잡는 것은 이미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해서 저는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는 조금은 폭력적이라고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 그림이 읽혀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이지요. 읽는다고 결심하는 순간 책을 집어 들고 무언가를 읽으며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곳에서 대화가 생겨납니다. 대화가 생겨나는 것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소통을 생각하며 저는 어설픈 범인의 심정으로 그림을 씁니다. 제 그림 안에 담긴 단서들을 찾아 범인을 찾아내시길 바랍니다.